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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식’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는 허례허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혼공장에서 1시간 간격으로 찍어내는 이벤트는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감동도 주지 못 한다. 예식을 치루는 당사자들도 그렇지만, 참여하는 모든 이가 불편하고 불편한…그렇고 그런 개똥같은 결혼식에는 참여해 달라 손 내밀고 싶지 않았다.



저녁이 없는 힘겨운 삶. 그 무게감만으로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게 보통 서민의 삶이다. 고통 속에 겨우 얻은 주말의 달콤한 여유로움을 나마저 앗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나는 스무살 무렵부터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차고도 한참 차고, 주위에서 결혼 언제 하냐는 이야기가 귀에 딱지가 될 무렵... 나의 결혼식에 대한 소신을 밝히자 많은 이들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긴 세월동안,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지만 그 맥락은 다양하지 않았다. 마치 케이블TV에서 흘러나오는 영혼없이 반복되는 재방송 쇼프로 같았다.



이야기들은 대체로 “뿌린 것은 거두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욕망으로 시작한다. ‘받을 것 받는 것’이라는 논리다.


축하를 위해서지…그 동안 돌려 받으려고, 뿌리고 다닌 건 아니잖아?!


과거 농경사회처럼 품앗이 하는 것도 아닌데, 돌려 받기 위해서 ‘결혼식’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구걸하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런 마음이 무겁고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에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결혼식 공장으로 불러내는 건 무척이나 마음이 불편한 일이다.




예식장을 찾는 이들이 손에 든 봉투에는 저마다의 숨은 사연들이 있다. 누구에게는 작은 돈이겠지만, 누구에게는 꽁꽁 숨겨둔 쌈짓돈일 수도 있고, 또 누구는 한끼의 식사비를 아껴 들고온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귀한 발걸음에 깊은 감사를 가져야 한다. 종종 관계가 봉투에 담긴 숫자로 평가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많은 결혼식에 참석하고, 지켜봤지만… 정작 봉투 하나 하나의 사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신랑 신부를 본 기억은 드물다. 1시간 남짓의 예식이 끝나면, 그 길로 끝인 경우가 많았다. 예식에 참여해 달라며 청첩장은 정성껏 돌리지만, 예식 후 찾아가 마음을 다해 결혼 축하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공장식 결혼을 했다면 나 역시 보통의 그들과 다르지 않을 자신은 없다.



못 이기는 척 남들처럼 예식을 치르면 금전적으로 상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의 경우도 계산해보니 비용 다 제하고도 족히 3,000~4,000만원 정도는 남는 장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룻만에 거액을 움켜쥘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엄청난 마진이 남는 훌륭한 장사 수단이다. 1년을 꼬박 일해 받는 연봉에 가까운 금액이니 상당히 큰 금액이다. 하지만 그것 뿐. 금전은 조금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손 벌리고 살 정도로 궁핍하지도 않으니…거액이라면 거액이지만, 앞으로 길고 긴 나의 삶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될 지도 사실 잘 모르겠고, 축하와 축복 받는 감사의 마음으로 애써 치환하기에도 무거운 마음과 저리는 양심을 담고 사는 댓가를 생각해 보면, 순식간에 물거품 같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결국 간섭받기 싫어하는 괴랄한 성격탓도 있겠지만, 나는 스스로 속박 받을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보통 현실은 현실이다라고 조언해 주었던 많은 이들은 알게모르게 부모들의 금전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랬다면, 그만큼 속박 받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어쩔수 없는 거다. 각자의 환경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스스로 번 돈’으로 분수에 맞게 작은 결혼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결혼문화에 대해 불합리를 이야기하고, 현실은 어쩔수 없지 않냐며 한탄은 하지만 좀처럼 자기 먼저 바꾸려 하진 않는다. 나는 나부터가 행동해야 세상이 조금은 바뀌어 나갈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소위 ‘부모론(loan)’이라고 하는 금전적 레버리지를 받지 않으면 결정에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부모, 형제, 친지 가족들과의 복잡한 관계와 어려운 이야기들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지인들에게 농담삼아 패륜 운운하며 ‘폐륜’을 이야기 했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부모님은 그들의 인생이 있고. 나는 나의 인생이 있는 것이다.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꾸렸으면 이제 두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다. 이 원칙은 결코 흔들지 않으려 한다.



횡설수설 글이 많이 길어졌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를 했는지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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